며느리와의 자충우돌 공동육아

임신출산양육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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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첫돌을 앞둔 손주 녀석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이제 막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한 손주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만사 모든 근심 걱정이 싹 날아가 버리죠. 그런 저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육아방식을 두고 요즘 큰며느리와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는 건데요. 비록 부러움을 살 만큼 다정한 고부 사이는 아니었지만, 요즘처럼 대놓고 삐걱거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무뚝뚝하여 살갑지 않은 성격이지만 매사에 똑 부러지는 성격이 저와 맞아 그간 잘 지내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돈 버느라 고생하는 자기 남편을 살뜰히 잘 챙기는 건 시어머니 입장에서 후한 점수를 줄만 했습니다. 그런 며느리와 요즘은 어쩐지 격조가 느껴집니다.

 

며느리는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없어, 제가 대신 임신 초기부터 신경을 많이 써왔습니다. 입덧이 심해 임신 10주 정도부터는 아무것도 먹질 못했고, 국물 한 숟가락이라도 떠 넣으면 그마저도 토하기 바빴습니다. 쓰러질 듯 야위는 것이 걱정돼 평소 며느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것저것 해다 먹였었죠. 출산 후에도 친정엄마 품이 그리울까 싶어 아들내외 집에 머물면서 산후조리를 도와줬습니다. 제가 아무리 신경을 쓴다고 해도 며느리 입장에서 불편한 점은 있었겠지요. 하지만 며느리와 함께 지내면서 저라고 무턱대고 마음이 편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 수건은 좀 작게 개주세요~. 서랍장에 넣기 어려워요. 젖병은 막 삶지 마시고 젖병소독기에 넣어주세요.”

며느리는 입으로는 어머니가 챙겨주셔서 감사하다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럼없이 말을 잘 꺼냈습니다. 제 살림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명색이 시어머니인데 대놓고 너무한다 싶기도 했죠. 무안하기도 하고, 무시를 당한 것 같은 느낌에 어찌할 바를 모른 적도 있었습니다.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 자존심이라면 저 역시 자존심이 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 시장 가셔서 닭 좀 사다가 닭볶음탕 좀 해 주세요. 호박즙 좀 따뜻하게 대펴서 갖다 주시고요.”

얘가 지금 나를 부리나?’하는 생각에 속으로 기가 찰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 제가 친정엄마 없이 여동생들 손에 산후조리 했던 모습이 겹쳐 보여 천생 어찌할 수 없는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요구가 점점 심해지는 며느리에게도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었던 겁니다.

 

그런데 출산 후 손주가 첫돌이 막 지났을 무렵부터는 며느리와 대놓고 의견충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아무리 돌 지난 애기라도 이 정도는 씹을 수 있어요. 그냥 큰 걸로 하나 줬어요. 어머니처럼 작게 잘라놓으시면 씹는 과정이 생략 되요. 씹는 게 두뇌발달에 얼마나 중요한데요.”

손주 녀석에게 줄 간식을 작게 잘라놓을 때면 그걸 본 며느리가 어김없이 얘기합니다. 음식물 씹기가 두뇌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쩐지 손주에게 성의가 부족해보여 한마디 건넸죠.

물론 씹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가 두 개 밖에 안 난 애가 뭘 그렇게 잘 씹는다고 큰 것을 주니?”

며느리는 아무 말 없었지만, 기분 나쁜 속내가 표정을 통해 역력히 드러났습니다. 제 말을 담아두었는지, 하루는 손주의 요구를 다 받아주는 저 때문에 애가 버릇이 나빠졌다면서 볼멘소리를 하더군요.

어머니는 해달라는 대로 해주시고, 저는 버릇 나빠질 까봐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하니까 애가 계속 제 눈치만 보잖아요.”

틀린 지적은 아니었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말 그대로 아직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의 행동을 어른의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하여 강제로 뜯어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 죽을 먹으면 애가 설사를 해요.”

얘는~ 죽 먹는다고 설사를 하니? 이제 막 돌 지난 애한테 어른들 먹는 것을 제한 없이 주는 것보단 그래도 죽이 낫지.”

이유식에서 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아이를 훈육할 때도, 아이를 재우고 밥을 먹이는 과정에서도 소소한 차이들이 드러났습니다. 저는 몇 달 더 이유식을 먹이자고 했고, 혼내기 보다는 조용히 타이르는 훈육방식을 강조했습니다. 손주를 재우는 시간에는 TV를 좀 끄자고 말했고, 밥을 먹일 때는 어른들의 속도가 아닌 아이의 속도에 맞춰 주자고 했습니다. 육아방식에 정답은 없는 것이기에, 무조건 시어머니의 방식을 따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1차 양육자가 엄마라는 점을 감안해 며느리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훨씬 앞서 아이를 키워본 인생 선배의 조언과 행동이 며느리에게는 잔소리와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보이는 듯 했습니다.

 

며느리와의 사이에 얼굴을 붉힐 만큼 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임신했을 때나 출산 직후 때와는 달리 어쩐지 제가 오는 걸 썩 반기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섭섭한 마음도 있어 한동안 가는 둥 마는 둥 했었죠. 며느리의 반응이 좀 시큰둥하기도 하고 시어머니로서 체통도 지키지 못하는 것 같아 하릴 없이 일부러 찾아가는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도움이 필요해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을 해올 때나, 부부동반 모임 같은 외출할 일이 있을 때만 찾아가 도움을 주곤 했습니다.

 

손주 녀석의 돌잔치 날이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 녀석이 언제쯤 커서 돌잔치를 할까 생각했는데, 한복을 차려입은 듬직한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손주가 더 커서 할머니라고 불러줄 날을 상상하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집니다. 손주 녀석의 성장과정이 담긴 동영상이 나올 때는 뭉클한 감정을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아들내외에게 ‘1년 동안 정말 고생했다며 다정하게 안아주었습니다. 날이 날인만큼 섭섭함은 이미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돌잡이를 하기 전 편지 낭송시간을 갖겠다고 하기에 고마운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하는가 보다하고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며느리가 단상에 서더니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편지는 항상 고맙고 사랑하는 어머니께로 시작됐습니다. 며느리는 제 쪽으로 시선을 돌려 눈빛을 맞추더니 다시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부족한 며느리 챙기시느라 항상 고생 많으시죠? 아이 돌잔치를 앞두고 누구보다도 가장 고마운 사람이 어머니인 것 같아 몇 자 적어봅니다. 다정스러운 말 한마디 못하는 무뚝뚝한 제게 어머니께서는 딸처럼 대해주셨어요. 임신하고 입덧 때문에 못 먹을 때도, 출산 후에 산후조리를 할 때도 친자식처럼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 덕분에 아이 낳고 친정엄마가 보고 싶을 때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어머니가 친정엄마 같아 더 투정부리고 편하게 대했는데, 아마도 어머니께서는 버릇없다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평소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속마음 한 번 표현 못하는 못난 며느리네요. 그래도 제 마음 다 아시죠? 항상 어머니 덕분에 웃고, 어머니 덕분에 힘을 낸다는 걸요. 어머니 보시기에 아이 키우는 것도 서툴고 미흡하겠지만 앞으로도 많이 알려주세요. 항상 딸 같은 며느리 될게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며느리의 진심이 담긴 편지가 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끝내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며느리는 제게 다가와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이번엔 제가 며느리를 한번 따뜻하게 안아주었습니다. 돌잔치에 모인 사람들도 눈물을 적시더군요. 며느리는 제게 더 가까이 다가오고 싶었는데, 정작 제가 곁을 내주지 않았던 건 아닌가 싶어 오히려 마음이 미안해졌습니다.

돌잔치가 끝나고 며느리가 직접 쓴 손 편지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와 서랍장에 고이 넣어두었습니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손 편지에서 며느리가 그간 전하지 못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한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읽어 내려갈 만큼 며느리의 진심이 따스하게 전해져왔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해주신 갈비찜이 좀 먹고 싶네요. 해주실 거죠?”

얘는 시어머니를 이렇게 대놓고 부려 먹니? 호호호.”

돌잔치 이후 아들 내외 집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 서로에게 조금씩 더 다가가게 됐는지, 며느리와 저는 크게 부딪힐 일 없이 공동육아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육아방식이 맞지 않을 때는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다소 섭섭한 일이 생기면 차 한 잔 나누며 곧바로 풀어버리려고 노력합니다. 비록 가끔씩 며느리를 도와주는 정도지만, 공동육아를 한다는 것은 서로의 노력과 이해가 상당히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저도 마음 든든한 친딸이 생긴 것 같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